인천 영화 주간 2022

12살 소녀 ‘토모’는 엄마와 단둘이 산다. 엄마 ‘히로미’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면 딸을 내팽개친 채 몇 날 며칠 집을 비우기 일쑤일 만큼 철이 없다. 그때마다 토모를 돌봐주는 이는 외삼촌 ‘마키오’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키오와 동거 중인 ‘린코’라는 트랜스젠더 여성이 함께 반겨준다. 경계하던 토모는 그녀가 정성 들여 준비한 도시락을 계기로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연다. 한편, 린코는 자신을 혐오하는 이들과 맞서 싸우거나 그들을 계몽시키려는 노력 대신에 뜨개질에 침잠한다. 그것은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그녀/감독이 택한 윤리적 방식이다.

어릴 때부터 린코에게 여성의 가슴은 늘 선망의 대상이었다. 어머니는 그런 그를 나무라기보다는 지지해주며 브래지어와 함께 직접 털실로 엮어 솜뭉치를 채운 가짜 가슴을 선물했다. 그것은 트랜스젠더로서의 성 정체성을 단순히 인정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자신의 몸을 불편해하는 그를 위로하는 돌봄 행위이다. 따라서 린코에게 있어 수술을 통해 얻게 된 풍만한 가슴은 완전한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한다. 그 가슴은 돌봄 행위 속에서 여체의 아름다움을 평가하는 기준을 벗어나 관계적 의미로 확장한다. 그런 기능에 충실하다면 그 가슴이 '진짜’일 필요는 없다. 린코는 악몽에 시달리던 토모를 깨워 품에 안는다. 토모는 진짜 가슴보다는 조금 단단한 인공 가슴을 주무르며 위안 받는다. 린코는 자신 가슴을 기꺼이 내어주며 토모의 정서적 결핍을 채운다. 이처럼 가짜 가슴은 영화 전반에 걸쳐 돌봄 관계의 매개로 활용된다.

마침내 돌아온 히로미에게 마키오는 토모를 자신들이 키우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히로미는 린코의 생리적 한계를 지적하며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의구심을 보인다. 그리고 자신이 딸에게 잠시 소홀했던 것은 엄마이기에 앞서 여자이기 때문이라고 변명한다. 그녀는 계속해서 돌봄 행위의 성패 여부를 개인의 자질 문제로 환원한다. 그러나 아이를 돌보는 것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인간의 의무이다. 따라서 부모나 가족의 자리를 인정받는 것보다 서로에 대한 돌봄 행위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 그것은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는 가슴이 무조건적인 우위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관점과 일맥상통한다. 가슴을 가슴답게 하는 것은 그것이 본래의 쓰임에 충실할 때이다. (김경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