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영화 주간 2023

역대 프로그램

IFWK 2021

무뢰한 | The Shameless

  • 한국
  • 2014
  • 118'
  • 18
  • Fiction
형사인 재곤은 범인 검거를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는 난폭한 냉혈한이다. 그러면서도 형사로서의 정체성이 훼손되는 일은 용납하지 않는다. 그는 후원금이라는 명목으로 주는 청탁성의 부정한 돈은 절대 받지 않으며, 그의 사전에 범죄 조직과의 협상이란 없다. 마치 그의 삶의 가치는 오직 그 견고한 정체성을 지켜내는데 있다는 듯, 병적으로 형사로서의 임무에 집착한다. 그런데 그가 좇고 있는 살인범 준길의 애인인 혜경의 등장으로 그는 시험에 들게 된다. 그는 혜경을 감시하기 위해 그녀가 마담으로 일하는 단란 주점에 영업상무로 위장 취업하면서 점차 그녀에게 빠져든다. 그들은 넘지 말아야 할 관계의 선을 넘어 버린다. 재곤은 형사로서의 임무와 혜경을 향한 사랑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는 준길이 혜경에게 부탁한 돈을 대신 구해주면서 준길을 버리고 자기와 살자고 말한 뒤, 금세 농담이었다고 말을 바꾼다. 사실 준길은 혜경을 지키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기에, 당장 그와 함께 할 수 없고, 빚까지 져가며 그에게 돈을 구해줘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를 버릴 수 없다. 결국 재곤은 혜경이 보는 앞에서 준길을 사살한다. 임무가 전부인 남자와 사랑이 전부인 여자의 관계는 영원히 어긋나 버린다. 재곤은 수소문 끝에 인천 송림동의 허름한 집에서 빚을 갚기 위해 마약 중독자의 수발을 들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사는 혜경을 찾아낸다. 영화에서 인천은 나이를 먹고 빚이 늘면서 서울 도심에서 주변부로 차츰 밀려나며 극한까지 내몰린 그녀의 비루한 삶과 공명한다. 그는 몇 날 며칠 동안 그녀 집주변에서 보초를 서듯, 혹은 용서를 구하듯 가만히 서있다. 혜경은 그런 그를 냉담하게 대할 뿐이다. 재곤은 그녀를 구원하기로 결심하며 그녀 집의 마약사범들을 덮친다. 그러나 혜경은 그의 선의를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으며 증오의 눈빛으로 그를 노려본다. 재곤은 배신을 한 것이 아니라 형사로서의 본분을 다 한 것이라고 항변하지만 소용없다. 그녀의 분노는 재곤이 신분을 속이고 그녀를 미끼로 이용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사랑의 가치보다 형사로서의 소명에 더 우위를 뒀기 때문이다. 재곤을 불러 세운 혜경은 품에 안기듯이 그의 배를 식칼로 찌른다. 그 죽음의 포옹은 준길에 대한 복수의 의미를 넘어선다. 사랑이 전부인 내 삶/세계에 더 이상 개입하지 말라는 최후의 발악이다. 그리고 사랑보다 앞서 있는 그 견고한 정체성을 파괴하려는 은유적 몸짓이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당신이 가진 모든 걸 걸어야 한다. 자신의 안위 따위는 안중에 없어야 진짜 사랑이다. 그 진짜 사랑은 모든 법과 정의와 논리보다 앞서 있다. 혜경이 준길에게 그러했고 준길이 혜경에게 그러했듯이 말이다. 배에 칼이 꽂힌 재곤은 그 교훈을 몸에 새긴 채 비틀거리며 골목길을 내려온다. 그의 뒤로 펼쳐진 어두워져가는 도시 풍경은 모든 것을 버리고 지켜야만 하는 날것 그대로의 사랑을 잉태한다. (김경태)
Director
오승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