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영화 주간 2023

역대 프로그램

IFWK 2021

차이나타운 | Coin Locker Girl

  • 한국
  • 2014
  • 109'
  • 18
  • Fiction
<차이나타운>이 묘사하는 인천 ‘차이나타운’은 우화적인 공간이다. 중국에서 온 밀입국자들부터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외계층들이 모여드는 무법지대이다. 그곳에서 신분증 위조와 불법대출, 장기밀매 등을 하는 범죄조직을 이끄는 화교인 ‘엄마’는 버려진 아이들을 모아서 일을 시키며 냉혹한 조직원으로 키운다. 그런데 모두가 그녀를 엄마로 부른다. 아이들에게는 자신들만이 그녀를 엄마로 부를 수 있는 특권마저도 없다. 엄마는 자식들을 범죄조직의 확대와 재생산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엄마가 엄마의 의미를 위반하고 있듯이,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모성애를 그녀에게서 기대하거나 목격할 수는 없다. 엄마의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 보여야만 한다. 자식들은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철저히 사용가치로 판단되기에 쓸모가 없어지면 버려진다. 버려진 신체는 인신매매와 장기밀매에 이용되며 교환가치로 전환된다. 엄마에게 인간은 바로 그 두 가지 가치로만 나뉘며 물화되어 있다. 영화에서 애초에 돌봄 노동에 충실해야 할 혈연가족은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 일영은 태어나자마자 이름도 없이 버려졌고, 석현은 필리핀으로 도주한 아버지의 빚을 대신 갚고 있다. 힘을 잃고 부패한 공권력은 엄마와 결탁하고 있다. 도박 빚에 허덕이던 형사가 어린 일영을 엄마에게 팔아버린 것이다. 일영에게 생존을 위한 선택지는 엄마 외에 없어 보인다. 엄마는 가족과 공권력의 기능 상실이 낳은 괴물이자 필요악일지도 모른다. 일영은 수금을 위해 찾아간 석현에게서 따뜻한 돌봄을 받는다. 그는 파스타를 만들어 주고 상처에 약을 발라준다. 그것은 익히 알고 있던 채무자의 태도가 아니기에 그녀는 당황해한다. 원래 그런 불법적인 채무 관계는 서로를 경계하고 적대하기 때문이다. 돈을 받아내는 일에도 늘 신체적 위협이 뒤따르기에 긴장해야 한다. 또한 그동안 타인에게서 받아본 적이 없는 무조건적인 친절인 약육강식의 세계에 길들여진 일영을 세차게 뒤흔든다. 인간을 사물처럼 대하는 가치관은 타인을 지향하고 위하는 돌봄 가치 앞에서 힘을 잃어버린다. 석현을 향한 일영의 마음은 사랑이나 연민을 넘어서 있다. 그녀는 그를 통해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을 일별했다. 일영은 엄마의 법을 거스르면서까지 엄마가 물려준 강한 의지로, 석현과 그의 세계를 보호하고자 애쓴다. 결국 일영은 자신을 길러준 엄마를 살해한다. 엄마는 저항 없이 일영의 손에 죽기로 결심했다. 자신이 군림했던 견고한 세계가 끝이 났음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그녀는 일영이 힘겹게 일궈낸 세계를 인정하며 이미 상징적인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자식을 위한 숭고한 희생이라는 모성신화가 전혀 다른 의미로 탄생하는 순간이다. 여기에서 희생은 자식이 기존 질서에 안착할 수 있도록 돌보는 헌신이 아니라 자식이 발견한 새로운 세계를 위해 자신의 자리를 기꺼이 내어주기 위한 자기 파괴이다. 이제 조직의 ‘엄마’가 된 일영은 타인을 위하는 돌봄이 지닌 무게를 절감하며 차이나타운을 환대의 공동체로 구축해 갈 것이다. (김경태)
Director
한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