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장사 마돈나 | Like a Virgin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동구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속하게 된 공동체들은 그에게 적대적이다. 먼저, 태생적 공동체인 가족은 폭력적인 가부장인 아버지에 의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 아버지는 집안에서뿐만 아니라 집 밖에서도 폭행을 일삼으며 문제를 일으킨다. 어머니는 그런 남편을 피해 집을 나가버렸다. 이제 동구는 아버지를 지켜내야만 하는 부담과 불안까지 짊어지게 된다. 그처럼 돌봄의 주체와 대상 간의 자리가 수시로 뒤바뀌며 가족은 동구에게 안정감을 주지 못한다. 한편, 아버지는 립스틱을 바르는 동구를 목격했지만 애써 외면한다. 자식이 트랜스젠더가 된다는 것은 아버지가 기대할 수 있는 선택지와 감당할 수 있는 인식의 범주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다음으로는, 동구가 교사들의 지도를 받으며 반 친구들과 함께 공부를 하는 학교가 있다. 그곳은 학생으로서 의무적으로 속하게 되는 학업 공동체이다. 쌍둥이 형제는 그의 여성성을 꼬집으며 그의 신체를 여성의 신체에 빗대며 놀려댄다. 그리하여 항문은 여성의 성기가 되고 살찐 가슴은 여성의 유방이 된다.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권위적이다. 겉으로는 다정해 보이는 교사도 성소수자에 대한 고정관념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일본어 교사는 평소에 동구에게 친절하지만, 동구가 사랑 고백을 하자 본색을 드러낸다. 여자가 되려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기 위해 애쓰지만 그가 속해있는 공동체들은 그 욕망을 이해하고 보듬기에는 경직되어 있다. 차이나타운에 살고 있는 화교 친구만이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결국 동구는 씨름부라는 대안적 공동체에서 지지와 위로를 받는다. 성전환 수술비 마련을 위해 가입하게 되는 씨름부는 기존 공동체들의 고착된 규범성에서 벗어나 있다. 씨름부 감독은 부원들 위에 군림하려는 권위의식도 없고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도 없다. 크게 간섭하지 않으며 그들이 자율적으로 연습하도록 유도한다. 동구의 아버지나 학교의 교사들과 비교해 그는 분명 위반적인 가부장이다. 부원들은 훈련을 받고 규율을 체득하기보다는 유희에 가까운 훈련을 통해 서로의 몸들을 탐색한다. 그들은 어딘가 모르게 결핍되어 있다. 벗은 상체를 맞대고 시합을 해야 하는 종목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민감한 겨드랑이를 지닌 부원과 너무 쉽게 발기를 하는 부원이 있다. 그리고 동구의 눈동자나 젖꽃판 등 신체적 특징들에 순수한 호기심을 보이며 자신의 욕망을 돌아보는 부원도 있다. 이는 앞서 쌍둥이 형제가 어떤 편견 하에서 그의 몸을 상상하는 것과 다르다.
기존의 공동체들은 공동체의 규율을 구성원의 신체에 각인시키고자 애쓴다. 그들은 계급의식을 주입하고 무한 경쟁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것은 공동체의 성패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씨름부는 머지않아 도태되어 버릴 공동체처럼 보인다. 그러나 차이에서 비롯된 차별 없이, 그리고 차이에 대한 이해의 강요나 압박감 없이, 오롯이 맨몸의 감각에 집중하며 서로를 포용하고 돌보는 공동체는 보다 견고하게 지속될 수 있다. 그 공동체의 기원은 특정한 목적이 아니라 관계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김경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