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영화 주간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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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춘할망 | Canola

10.23.(일) 18:00 CGV 인천연수 3관
<계춘할망>에서 윤여정은 검게 그을린 거친 피부와 깊게 패인 주름을 지닌 얼굴의 제주 해녀 ‘계춘’으로 분해 손녀를 위해 헌신하는 가모장의 모습으로 관객들의 가슴을 울린다. 계춘은 12년 전에 시장에서 잃어버렸던 손녀 ‘혜지(김고은)’와 마침내 재회한다. 혜지가 돌아올 거라 믿으며 팔지 않았던 낡은 집에서 다시 예전처럼 단둘이 살게 된다. 이제 여고생이 된 혜지는 계춘과의 관계를 서먹해하며 낯선 제주 생활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이내 그녀의 진심에 마음을 연다. 혜지의 품행이 불량하다는 동네 주민들의 뒷담화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혜지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낸다. 계춘은 혜지에게 언제나 네 편을 들어 줄 테니 원하는 대로 살라고 말하며 적극적인 지지를 보낸다. 이제 혜지도 계춘을 챙기며 자신을 향한 믿음에 보답한다.

사실 혜지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친손녀 행세를 하면서 계춘을 속이고 있었다. 과거에 혜지는 어머니를 교통사고로 잃었고 도박에 빠져 빚에 시달리는 아버지와는 연을 끊었기에 어른들로부터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했다. 심지어 아버지는 제주도까지 찾아와서 혜지에게 돈을 요구한다. 그녀가 경험해 온 어른의 세계는 그런 것이었다. 그만큼 계춘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무척 낯설고 어리둥절하다. 그럴수록 자신의 거짓말에 대한 죄책감은 더 커진다. 결국 혜지는 친손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고 떠나지만, 이제 계춘에게 더 이상 핏줄의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어쩌면, 자신이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고백한다. 영화의 진정한 반전은 혜지의 정체가 아니라 계춘의 마음이다.

여기에서 혈연이라는 믿음, 혹은 오해는 그저 가족의 출발점으로서 기능했을 뿐이다. 가족은 원래 그런 관계로 세상에 던져지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서로 부대끼며 보살피는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혜지에게 가족이라는 이름은 아버지로 인해 오히려 족쇄와 같았다. 우연히 가족으로 맺어진 연이 의미를 갖고 필연으로 지속되기 위해서는 각자의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계춘할망>은 가족의 근간이 핏줄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믿음이라고 말한다. 윤여정은 그 깨달음의 지난한 과정을 뛰어난 연기로 펼쳐 보인다. 그리하여 손녀이기 때문에 당연히 사랑하는 것과 손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계속 사랑하는 것 사이의 간극을 단숨에 좁혀낸다. (김경태)
Talk
김도훈

작가, 영화 칼럼니스트. 2004년 영화 주간지 『씨네21』 기자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남성 패션지 『GEEK』의 디렉터와 온라인 미디어 『허핑턴포스트』 편집장을 거쳤다. 에세이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를 썼다.

이화정

영화 저널리스트. 전 『씨네21』 취재팀장. 현 유튜브 <무비건조> 멤버이며, MBC <출발! 비디오여행> 인터뷰어로 출연 중이다. 한국 영화계 성평등 인식 향상을 위한 ‘벡델데이’ 프로그래머이자 경기영상위원회 자문위원이다. 저서로 『영화평도 리콜이 되나요?』(공저) 등이 있다.

주성철

영화평론가. 『키노』, 『필름2.0』을 거쳐 『씨네21』 편집장으로 일했다. 『그 영화의 뒷모습이 좋다』 『영화평도 리콜이 되나요?』(공저) 등을 썼다. JTBC <방구석1열>, OCN , 유튜브 <무비건조>에 출연 중이다.

Director
  • 피원에이치: 새로운 세계의 시작 (2019)
  • 숲속의 아이 (2017)
  • 치명도수: RESET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