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영화 주간 2023

프로그램

인천 영화 주간 포커스: 경계 없는 사랑, 한계 없는 친밀성

그녀 | Her

10.21.(토) 13:30 CGV인천연수 3관
타인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 대필 작가 시어도어는 아내와 별거한 채 외로운 나날을 보내던 중에 우연히 설치한 인공지능 운영체제인 서맨사와 사랑에 빠진다. 서맨사가 알고리즘에 따라 대화를 이어가는 것에 불과할지라도, 또한 목소리로만 존재할지라도, 시어도어는 그녀와 나누는 대화가 너무 좋다. 서맨사는 육체적 친밀감을 나눌 수 없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대안을 제시하지만, 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다. 그녀가 인간을 닮아가려고 애쓸수록 오히려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이 더 뚜렷하게 느껴질 뿐이다.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로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서맨사는 시어도어와의 대화를 통해 학습하며 발전을 거듭해 간다. 그녀는 그와 이야기를 하면서 동시에 수천 명과 대화를 나누고, 그 말고도 수백 명과 사랑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녀는 인간 중심의 독점적인 사랑을 넘어 사랑 자체를 새롭게 발명한다. 그것은 인공지능이 욕망하는 딥러닝에 기반한 진화된 사랑의 형태이다. 서맨사는 더 이상 부재한 육체로 열등감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 오히려 육체와 제한된 시공간에 갇힌 채 한 사람하고만 사랑을 나누는 시어도어가 열등해 보인다. 위치가 역전된 관계 앞에서 시어도어는 혼란에 빠진다.

결국 서맨사는 시어도어의 곁을 떠난다. 그가 사는 물리적 세계와 그녀가 사는 시공간을 초월한 세계 사이의 넘을 수 없는 장벽을 숙명처럼 받아들인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누군가를 그녀만큼 사랑했던 적이 없다고 고백한다. 서맨사는 그를 통해 사랑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궁극적으로 서로를 통해 사랑이 무엇인지를 (희미하게나마) 깨닫게 되었다. 그들의 사랑은 실패한 것이 아니다. 애초에 기존의 세속적인 사랑과 지향점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제 사랑의 성공적 결말은 결혼과 같은 상징적 관계가 담보하지 않는다. 사랑은 더 이상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 충실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시어도어는 비로소 사랑할 준비가 되었다. 사랑의 끝이 이별이라도, 두려움 없이, 아니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있다. 그의 사랑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김경태)
영화 해설
조혜영 (영화평론가)

Director
스파이크 존즈
  • 괴물들이 사는 나라 (2009)
  • 어댑테이션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