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영화 주간 2023

프로그램

인천 영화 주간 포커스: 경계 없는 사랑, 한계 없는 친밀성

마릴라: 이별의 꽃 | Malila: The Farewell Flower

10.22.(일) 20:15 CGV인천연수 2관
셰인과 피치는 한때 동성 연인 사이였다. 당시 피치는 어머니가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하자 셰인에게 함께 고향 마을을 떠나 방콕으로 가자는 제안을 하지만 유부남이었던 셰인은 거절했다. 부인과 딸을 버리고 동성애자로서의 삶을 선택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피치가 떠나버린 후, 셰인에게는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하나뿐인 딸이 개미총 옆에서 구렁이에게 휘감긴 채 죽고, 뒤이어 아내마저 그를 버렸다. 홀로 남은 그는 재스민 농사를 짓고 있다. 한편, 암에 걸린 피치는 항암치료를 중단한 채 고향으로 돌아온다. 재스민 꽃과 나뭇잎을 엮어 만든 태국 전통 화환인 ‘바이스리’ 제작에 열중하며 남은 생을 보내고자 한다. 마침내 재회한 셰인과 피치는 다시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피치의 임박한 죽음을 목격한 셰인은 불교에 귀의하기로 결심한다. 승려 되기는 속세의 사랑을 초월해 또 다른 차원의 사랑을 시작하기 위한 전제이다. 피치는 재스민 꽃과 나뭇잎을 꺾어 시들기 전에 빠른 손놀림으로 보다 화려한 형태의 바이스리를 만들어 그에게 선물한다. 그러나 그것은 금세 생생한 빛깔을 잃어버리고 만다. 피치는 아쉬워하기보다는, ‘시들어 버린 꽃은 그 나름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한다. 죽음도 삶만큼 아름답기 때문이다. 원래, 바이스리는 떠난 영혼을 불러오는 주술적 의미를 지닌다. 이는 죽음 이후의 사랑, 혹은 죽음과 함께 머무는 사랑에 대한 감각을 일깨운다. 죽음은 그들의 사랑을 멈출 수 없다.
피치는 끝내 예정된 죽음을 맞이한다. 이제 셰인은 승려로서 본격적으로 고행과 묵상을 이어간다. 산 속에 버려진 익명의 부패한 시체를 응시하며 고된 참선에 돌입한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 시체는 피치의 형상으로 변해 그 앞에 서 있다. 가장 사랑했던 이가 가장 혐오스런 이와 일치된 채 나타난 것이다. 셰인은 그 시체/피치를 끌어안고서 눈물을 흘린다. 이처럼 절대적인 타자를 경유하며 피치를 ‘다시’ 사랑하고 ‘비로소’ 사랑한다. 하나의 진심어린 사랑에서 비롯된 고행은 불특정 타자들을 향한 무한한 친밀성의 자각으로 확장된다. (김경태)
Director
아누차 분야와타나
  • The Blue Hour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