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영화 주간 2023

프로그램

인천 영화 주간 포커스: 경계 없는 사랑, 한계 없는 친밀성

헤어질 결심 | Decision to Leave

10.22.(일) 20:15 CGV인천연수 1관
간병인으로 일하는 중국인 서래는 남편이 산 정상에서 의문의 추락으로 사망하지만, 언젠가는 벌어질 일로 치부하며 침착한 반응을 보인다. 이에 형사인 해준을 비롯한 경찰들은 그녀를 용의자로 특정하고 수사를 벌인다. 해준은 그녀를 취조하거나 그녀의 일상을 밤낮으로 감시하며 서서히 그녀에게 빠져든다. 서래 역시 여느 남자들과 다르게 자신을 ‘품위’ 있게 대하는 그에게 조금씩 마음을 연다.

해준과 서래는 취조의 형태로 대화를 나누면서 친밀감을 쌓아간다. 물론 애초에 그들은 친밀한 교류를 목표로 서로를 배려하는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형사와 용의자라는 각자의 위치는 성적 긴장감을 배제한 채 서로를 냉정하게, 나아가 적대적으로 대하도록 가정한다. 특히 형사는 용의자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피의자로의 전환 여부를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해준은 서래를 심문하고 의심하면서 그녀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본다. 심문과 진술의 상호작용은 그저 그들이 친밀해지는 의례적 과정으로서 유의미할 뿐이다. 영화는 잠복하는 해준이 수시로 그녀의 사적 공간 안으로 침투하거나 그녀의 일상에 개입하는 상상 장면을 통해 그들의 심리적 근접성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그들은 너무 다른 세계에서 살아왔기에 형사와 용의자 관계가 아니었다면 마주 앉아서 친밀하게 소통할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공적인 관계로 처음 만났으나 사건의 특성상 사적인 내용을 묻고 답한다. 친밀하지 않은 관계에서 오가는 친밀한 대화라는 비관습적인 상황은 낯선 친밀성을 낳는다. 여기에서 사랑은 개인의 역사를 비워낸 주체의 편견 없는 오랜 응시로부터 기원한다. 결국 해준은 남편의 죽음을 자살로 종결짓고 서래를 무혐의로 풀어주는 실수를 범한다. 그의 말대로, 그는 여자에 미쳐서 수사를 망치고, 형사로서의 자아는 완전히 ‘붕괴’되어 버린다. 그런데 원래 사랑이란 자신의 견고한 틀을 무너트리고 깨트리는 것 아닌가. 사랑에 빠진 이는 모든 법과 도덕률을 초월할 뿐만 아니라 자기 파괴적이다. 그리하여 완전히 붕괴되었다는 그의 선언은 진심 어린 사랑 고백과 다름없다. (김경태)
Director
박찬욱
  • 일장춘몽 (2022)
  • 아가씨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