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영화 주간 2023

역대 프로그램

IFWK 2021

그대를 사랑합니다 | Late Blossom

  • 한국
  • 2010
  • 118'
  • 15
  • Fiction
노인들의 사랑과 우정을 다룬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주요 배경은 인천의 숭의동 마을이다. 그곳은 언덕배기 위에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달동네이다. 매일 새벽, 만석은 좁은 골목길을 오가며 우유를 배달하고, 이뿐은 폐지를 실은 리어카를 밀며 위태롭게 경사로를 오간다. 그 공간적 특성은 그들이 만나 서로를 도우며 사랑에 빠지는 조건이 된다. 한편, 군봉과 아내는 자식들을 모두 분가시키고 둘이 살고 있다. 군봉은 주차장 관리요원으로 일하면서 치매에 걸린 아내를 홀로 돌보고 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낮은 담장의 낡은 집들은 그들 주변을 따뜻하게 감싸며 지키고 있다. 이처럼 마을은 그들의 넉넉하지 못한 삶을 대변하는 공간으로 한정되지도 않고, 노인들이 생활하기에 그저 불편하기만 한 공간으로 재현되지도 않는다. 대신 노인들이 서로 돕고 의지하는 공간적 기원으로 제시된다. 영화는 잦은 부감 쇼트로 마을을 내려다보며 그 점을 강조한다. 그들은 자식들의 의무적 돌봄에 기대거나 의존하지 않는다. 자식이 부재한 삶을 후회하지도, 부양 의무를 다하지 않는 자식을 원망하지도 않는다.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가족 공동체에게 노인에 대한 돌봄의 책임을 묻고 전가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노인들이 서로를 적극적으로 돌보며 그들만의 공동체를 형성해 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만석과 이뿐은 군봉을 도와 그의 아내를 정성껏 보살핀다. 노인들은 돌봄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그 스스로가 당당한 주체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노년에 필요한 공동체는 어떠한 모습이어야 할까에 대한 질문에 답하며 돌봄으로 연대한다. 나아가 그들의 사랑과 우정은 오랜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방향으로 향한다. 남편의 폭력에 시달렸던 이뿐은 그가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아 하나뿐인 아이를 병으로 잃게 된 과거를 털어놓는다. 만석은 죽은 아내를 떠올리며 생전에 아내에게 무심했던 자신을 한탄한다. 군봉은 자식을 위해 아낌없이 희생했던 아내의 삶을 돌아보며 치하한다. 동병상련의 노인들은 가족보다 더 가깝게 서로의 삶에 개입하며 남은 생애를 위한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무력한 노년이라는 편견을 넘어 자신의 삶에 대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능동적 주체로 우뚝 선다. 그 주체는 삶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과 집착으로 향하지 않는다. 대신에 자기 삶의 결말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닌다. 군봉은 시한부 판정을 받은 아내와 함께 생을 끝내려 한다. 이뿐은 만석과의 사랑을 간직한 채 홀로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만석은 그녀의 선택을 받아들인다. 이미 그들은 함께 했던 추억을 가슴에 품고서 죽음과 마주할 용기를 얻는다. 특히, 임종을 앞둔 만석은 추억을 꺼내드는 대신 이뿐과 재회하는 미래를 상상하며 미소 짓는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들을 쉽게 동정할 수 없다. 삶의 가치가 무엇을 소유했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했느냐가 기준이 된다면, 그들의 죽음을 함부로 안타까워할 수 없을 것이다. (김경태)
Director
추창민